詩다움
새벽 네시는 왜 나를 깨우는가 [조용미]
초록여신
2008. 1. 14. 06:02
잠에서 깨어나면 늘 새벽 네시의 희뿌윰한 달빛과
기차소리가 있다
기차소리가 지나간 다음 새벽 네시는
사람의 옆모습을 갖다놓거나 분홍빛 상사화의
꽃대를 분질러놓기도 한다
새벽 네시는 왜 나를 깨우는가
한때 자막 없는 흑백영화와 우울한 음악 사이를
지칠 때까지 헤매다니다가 쓰러지곤 한 시간,
그 시간이 나를 찾아와 머리맡에 검은 옷자락을
늘어뜨리고 말없이 우두커니 서 있다
내가 네시의 전언을 다 헤아리지 못해
어느 시집의 곳곳을 하릴없이 돌아다니다가 그만
한사람의 가장 비밀한 부분을 보아버렸을 때,
나는 새벽으로 난 길을 끊어버리고 다시
내 안으로 깊숙이 돌아와버렸다
새벽의 끝에서 또 한번 기차소리가 들려왔고
내가 가지 못한 새벽길은
달빛에 희게 번쩍이며 멀리 구부러진다
사람이 가지 못한 모든 길은 새벽에
저 혼자 하얗게 빛난다
* 일만 마리 물고기가 山을 날아오르다, 창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