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버즘나무 껍질 다 벗겨져 하얗게 빛나는 [조용미]

초록여신 2008. 1. 14. 05:55

 

 

 

 

 

 

 

 

 

 

 

은해사동화사기림사파계사신륵사환성사보광사유가사운주사전등사정수사보문사

국도변에 서 있는 가로수 같은 이 절의 이름들을 거쳐 겨울을 지나왔다.

어떤 나무는 사람의 이름 같기도 한 문신을 내 몸 깊숙이 새겨놓았다

흰 테를 두른 손바닥만한 사진 속에서 흑백으로 환하게 웃고 있는 아버지

銀海寺 가는 길,

사진 뒤에 남겨놓은 글자들의 힘을 빌려 나는 하양이나 서해의 조그만 섬을 찾았다

내 나이의 아버지가 거기에서 본 것은 내가 본 것과 같은 것이었을까

그가 다닌 길 위로 강이 물줄기를 바꾸기도 하고 산속 깊은 곳에는 암자가 생겨났다

오래고 큰 나무들 앞에 간혹 멈추어서서 손금을 들여다보며 내게로 이어진 쓸쓸하고 긴 시간들

버즘나무 껍질 다 벗겨져 하얗게 빛나는,

내가 그리움으로 혹은 욕망으로 만들어놓은 저 먼길

 

 

 

 

 

* 일만 마리 물고기가 山을 날아오르다, 창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