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그 담쟁이가 말했다 [강은교]

초록여신 2008. 1. 13. 12:20

 

 

 

 

 

 

 

 

 

 

 

 

 나는 담쟁이입니다. 기어오르는 것이 나의 일이지요.

 나의 목표는 세사에서 가장 길며 튼튼한 담쟁이 줄기를 이루는 것입니다. 옆 벽에도 담쟁이 동무 잎들이 기어오르고 있었지만 내가 더 길고 아름답습니다. 내 잎들은 부챗살 모양입니다.

 

 

 오늘도 그 사람이 보러 왔습니다. 나는 힘차게 벽을 기어 올라갔습니다. 그 사람은 한참 동안이나 나를 바라보다가 벽의 어깨를 한 번 쓰다듬고는 떠나갔습니다.

 나는 부챗살로 벽을 기어 올라갔습니다. 주홍빛 아침 해가 내 꿈밭 위에서 허리를 펼 때까지. 아아, 세상에서 가장 눈부신 담쟁이 줄기가 될 때까지, 있는 힘을 다해.

 

 

 

 

 

* 시간은 주머니에 은빛 별 하나 넣고 다녔다, 문학사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