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몸살 [이재무]
초록여신
2008. 1. 9. 21:28
감기와 사랑, 구두에 달라붙는 진흙 같은 집착
저만큼 밀어내면 한동안 잠잠하다가
슬그머니 스며와 생활을 물고 흔든다
지천명 코앞에 두고 찾아온 바이러스
벼르고 왔는지 가난한 집에 들른 식객처럼
좀체 나갈 줄 모른다 바이러스도 진화를 한다
요즘 것들은 성깔이 지랄 같아서
질긴 살가죽 잘근잘근 씹기도 하고
성긴 이빨로 뼈마디 갉아대기도 한다
몸에 장기투숙하며 긴한 약속 깨뜨리고
식욕도 의욕도 뿌리째 흔들어놓는다
멀쩡한 나를 쓰러뜨리고
머리에서 발끝까지 다스리고 주무르는 동안
아, 아무도 미워하거나 시기할 수 없고
누구도 간절히 그립지 않다
몸살에 치를 떠는 동안 나는, 축축한
이불 훌훌 털고 일어나 그저
밥 한 그릇 맛있게 먹는 것만 소원한다
생활이 피우는 애증의 불꽃 가물가물 시들 때에야
활동을 끝내고 몸을 나가는,
그러나 사는 동안 도가 넘치면 다시 찾아와
허황된 욕심 또 아프게 채찍질할 것이다
* 저녁 6시 / 창비, 2007.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