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기파랑을 기리는 노래 [이성복] ㅡ 2008 제53회 現代文學賞 수상작

초록여신 2007. 12. 25. 21:54

기파랑을 기리는 노래

ㅡ 나무인간 강판권

 

 

 

 

 

 

 

 

 

 

 

 

언젠가 그가 말했다, 어렵고 막막하던 시절

나무를 바라보는 것은 큰 위안이었다고

(그것은 비정규직의 늦은 밤 무거운

가방으로 걸어 나오던 길 끝의 느티나무였을까)

 

 

그는 한번도 우리 사이에 자신이

있다는 것을 내색하지 않았다

우연히 그를 보기 전엔 그가 있는 줄을 몰랐다

(어두운 실내에서 문득 커튼을 걷으면

거기, 한 그루 나무가 있듯이)

 

 

그는 누구에게도, 그 자신에게조차

짐이 되지 않았다

(나무가 저를 구박하거나

제 곁의 다른 나무를 경멸하지 않듯이)

 

 

도저히, 부탁하기 어려운 일을

부탁하러 갔을 때

그의 잎새는 또 잔잔히 떨리며 웃음 지었다

ㅡ아니 그건 제가 할 일이지요

 

 

어쩌면 그는 나무 얘기를 들려주러

우리에게 온 나무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나무 얘기를 들으러 갔다가 나무가 된 사람

(그것은 우리의 섣부른 짐작일 테지만

나무들 사이에는 공공연한 비밀)

 

 

 

 

 

 

* 2008 제53회 現代文學賞 수상시집 ㅡ 수상작 중에서, 현대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