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우유에게 - 사랑이 나를 덮치다
유리구슬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어느새
유리구슬 속에 갇혀버렸다
이후, 숨소리가 고르지 않았다
아마도 아침이었다 눈을 떴을 때 마침 벨이 울렸다
문밖에 나가 보니 편지와 우유가 놓여 있었다 편지를
뜯고 보니 몇 번쯤 스쳐들었던 이웃 마을의 소식이었
다 그 마을에 대해 알게 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매
일같이 배달돼오던 우유가 낯설어 보인 것도 처음이었
다 두 손으로 우유병을 감싸쥐고 우유를 마셨다 뱃속
에서 퍼지는 우유가 흰빛으로 머리에 그려지는 게 그
리 이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하늘에 떠 있는 모든 것
들이 언젠가 본 듯한 모습이란 게 조금 이상한 일이었
다 그렇게 나의 새로운 날들이 시작되었다 들에 나가
면 일하다 말고 멀리 이웃 마을 쪽을 쳐다보았고 불현
듯 목이 말라 우유병을 찾게 되었다 매일같이 배달돼
오던 우유가 갑자기 오지 않을 수 있다는 불안감에 시
달리기도 했다 하루하루 배달돼오는 우유병을 손에 쥐
고서야 가까스로 숨쉴 수 있었다
언젠가는 가고야 말 것을, 나는 가야만 했다
우우병에 씌어 있는 이웃 마을의 목장과 우유 공장
으로 가야만 했다
어떤 곳인지 알 수 없었으므로 더욱 가야만 했다
우유가 내게로 온 길이 내가 찾아가야 할 길이었다
그 길 그 길 머릿속에 흰빛으로 그려지는 그 길을
따라가면
내일 아침에 이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눈앞에 길이 있었다
걸음만 내다디면 굴러가는 둥근 유리구슬 벽
- 연왕모, '개들의 예감'(202) 중에서
* 쨍한 사랑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