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상 해변이 늦된 철학개론서의 번안 같았습니다
아무도 못 보는 사이
잔파도 몇 소소롭게 부서지는 거 보았습니다
-나, 무사합니까?
-그 연세에 무사해서 뭣 혀?
수평선 흐트러질까 봐 조심히 떠 있는
화물선 한 척
흔들리는 지하철에서 몸 가누듯이
겨우 정신 붙들고 내 곁으로 오는 거
생각 없이 그냥 보게 됩니다 배는
내 배에다 짐 부려놓고 등 뒤로 흘러갔을 겁니다
망상 해변에 서서 이 모든 상황 속에
본의 아니게 나를 꾸역꾸역 집어넣었습니다
이 시는 그 상황에 담기지 못하고
뭉개져 흘러나온 물건일 뿐입니다
본의 아니게 그날 빗방울도 몇 점 떨어졌습니다
* 본의 아니게 / 문학의 전당, 2011.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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